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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로힝야족 인터뷰] "로힝야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By Ock Hyun-ju

Published : Sept. 10, 2017 -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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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으면서도 마음이 안 편해요. TV로 뉴스를 확인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가족들이 너무 걱정 되어 손에 일이 안 잡힙니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논란 속에 한국에 거주하는 11명의 로힝야족 중 한 명인 모하메드 이삭(51)씨를 만났다. 지난 2006년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고 이곳에정착한 그는 연신 고향인 라카인 주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의 생사를 몰라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수요일에 통화했을 땐 라카인에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상황이 아주 위험하다고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니까…” 라며 말 끝을 흐렸다.

미얀마 북쪽에 위치한 라카인 주는 로힝야 족의 대부분이 모여사는 곳으로, 미얀마 정부와 로힝야 반군 간의 폭력 사태로 민간인의 피해가 확대되고 있는 지역이다. 모하메드 씨의 가족도 그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계속되는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을 피해 라카인을 떠나 방글라데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 이삭(51)씨가 아들 모하메드 리얀(7)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이슬람 사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옥현주 기자/코리아헤럴드)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 이삭(51)씨가 아들 모하메드 리얀(7)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이슬람 사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옥현주 기자/코리아헤럴드)

“미얀마 정부군이 사람을 죽이고, 집 태워버리고, 여자들은 성폭행 한다고 한다. 이 상황은 멈춰야한다”고 모하메드씨는 말했다.

유엔에 따르면 미얀마군과 로힝야족 반군간 유혈 충돌이 시작된 지난달 25일 이후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난민이 27만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로힝야 인구(110만명) 4분의 1 규모에 육박한다.

이번 사태는 로힝야족 반군단체인 아라칸 로힝야구원군(ARSA)가 지난 25일 경찰초소를 습격하면서 촉발됐다. 토벌작전에 나선 미얀마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정부군이 민간인을 집단공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모하메드 이삭 (옥현주 기자/코리아헤럴드) 모하메드 이삭 (옥현주 기자/코리아헤럴드)

미얀마 정부는 라카인 주의 유혈 사태를 두고 로힝야 “테러리스트”를 진압하기 위한 과정이며, 정부군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성폭행을 자행했다는 의혹은 반군의 자작극이며 “가짜뉴스”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모하메드씨는 “로힝야족은 테러리스트 아니다. 우리는 종교를 가질 권리, 인권을 위해 행동하는 것뿐이다. 미얀마군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집단 학살(genocide)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로힝야족을 아예 미얀마에서 쫓아내고 우리의 역사를 지워버리려 한다”며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가 거기 살았는데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로힝야족은 국민 약 90%가 불교신자인 미얀마에서 이슬람 교리를 따르는 소수민족이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민자로 간주하며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이동할 자유, 결혼할 자유 등을 제한해왔다.

모하메드는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국적이 없으니까 로힝야족은 좋은 학교도 가기 어려웠고, 일자리도 찾기 힘들었다. 결혼 하려면 정부에게 허가 받아야 했다. 라카인 주 내에서 다른 시로 이동하려고만 해도 무슬림들은 허락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삭은 학창시절 1988년 미얀마에서 군부정권에 대항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미얀마 정권의 정치적 박해 대상이 되었다. 그는 미얀마를 떠나 방글라데시에서 12년간 로힝야족들을 돌보고, 공부를 가르치다 2000년에 화물선을 타고 인도를 거쳐 한국으로 밀입국했다.

이태원 곳곳을 전전하며 불법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던 중 2003년에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했고, 2006년에 난민으로 인정 받았다. 2007년엔 아내와 3명의 아이들도 한국에 입국했으며,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 자문역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아웅산 수치가 자문역이 되고 우리 (로힝야족) 인권문제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지금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은 더 심해지고 있다. 우리는 로힝야족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노벨상까지 받은 인권운동가가 왜 우리 인권만 신경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치 자문역은 군부독재에 항거해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이끈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2012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승리하면서 최고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그는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강경 진압을 방관하고 두둔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모하메드는 로힝야족의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국제사회와 한국사회의 관심과 미얀마 정부에 대한 압박을 촉구했다.

그는 “국제사회는 미얀마 정부를 더 압박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로힝야족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정부에서도 로힝야 인권 관심을 갖고 미얀마 정부에게 인권문제 해결하라 목소리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무부의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을 통해 로힝야족을 한국에 정착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지난 3년간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태국-미얀마 접경 지역 메솟 난민캠프에 머무는 미얀마 카렌족 난민들을 86명 받아들였다. 로힝야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모하메드는 “로힝야족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미얀마 정부가 우리에게 시민권을 주고, 인권을 보호해주고, 우리가 미얀마 사람들과 라카인에서 함께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는 미얀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미얀마에서 공부했어요. 제가 어떻게 다른 나라에 살겠어요. 저는 미얀마 사람입니다. 평화가 오면 미얀마에서 살고 싶습니다.”

코리아헤럴드 = 옥현주 기자 (laeticia.oc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