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미도 춤추고 떼창하고…"어메이징" BTS 공연

  • Published : Oct 13, 2019 - 09:02
  • Updated : Oct 13, 2019 - 09:02
해외 가수 최초 스타디움 공연에 3만 관객…멤버들 "우리 또 봐요"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ove)가 흐르자 아바야(목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검은색 긴 통옷)를 입은 여성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불과 2년여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선 공공장소 등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춤을 추는 것이 금기였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을 향한 마음 앞에선 엄격한 종교적 율법도, 체득된 보수적인 관습도 소용없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일찌감치 객석을 채운 사우디 아미(팬클럽)의 행복감은 현장에서 고스란히 전달됐다.

여성 팬 대부분이 아바야를 입고 얼굴에 니캅, 히잡, 차도르를 썼지만, '꿈에 그리던 스타'의 뮤직비디오가 스크린에 나오자 아미밤(방탄소년단 공식 야광봉)을 흔들며 한국어 가사로 '떼창' 했다.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아이돌' 중)

추임새가 들어갈 타이밍도, 발음도 정확했다. 멤버들 이름을 차례로 부르고 "BTS"를 연호하는 응원 구호 역시 절도 있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지역 공연장 열기와 온도 차가 없었다.

2년 전만 해도 여성들의 축구경기장 입장을 허용하지 않던 사우디에서 남녀 관객이 한 공간에서 관람하는 모습은 근래 개방과 개혁에 가속도가 붙은 사우디 변화상을 엿보게 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또 춤과 음악이 금기시된 지역에서 퍼포먼스로 채운 대규모 공연이 열리고, 여성들이 소리 높여 환호하는 모습은 다수 현지인에게도 놀라운 듯했다.

19살 때부터 사우디에서 살았다는 요르단 출신 남성 라드완 아따윌(53) 씨는 "처음 보는 어메이징한 풍경"이라며 "10대들이 더 행복해지고 오픈 마인드가 된 것 같다. 놀랍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3만 관객 보랏빛 물결…아랍어로 지민 생일 축하송 불러

조명이 들어온 무대에 거대한 표범 모형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공연이 시작됐다.

첫곡 '디오니소스'(Dionysus)부터 플로어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해 방탄소년단을 눈앞에서 본 감동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3만 관객이 손에 든 아미밤은 이들의 상징색인 보라색 등 다양한 빛깔로 물결을 이뤘다.

관객들은 진의 손 키스, 뷔의 미소, 지민의 손동작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환호했다. 휴대 전화 라이트를 일제히 켜거나, 멤버들 제안에 파도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멤버들도 "아홉브쿰 아미"(사랑해요 아미), "알 아브딸"(최고), "슈크란"(감사합니다) 등 짧은 아랍어를 영어에 섞어가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RM은 "여러분이 먼 곳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는 사랑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은 오랫동안 방탄소년단을 기다려온 아미들을 위한 축제"라고 인사했다.

30도를 훌쩍 웃도는 날씨에 멤버들은 2곡 만에 비 오듯 땀을 흘렸다. 그런데도 완전체, 솔로, 유닛으로 변화를 주며 시종일관 경쾌한 발놀림으로 길게 뻗은 돌출 무대까지 누볐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와 '불타오르네'(Fire), '아이돌', '페이크 러브'(Fake Love)로 이어지는 히트곡 퍼레이드에선 가장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아미밤을 열렬하게 흔들며 합창했다. 흰색 토브(아랍 전통 의상)를 입은 남성 관객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으며 리듬을 탔다.

연출의 묘미도 집중력을 높였다. 정국은 '유포리아'(Euphoria) 무대에서 리프트를 타고 공중으로 날았다. 몇몇 장면에선 워터 캐논(물대포)이 터지고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앙코르 무대가 되자 13일이 생일인 지민을 위해 아랍어 축하송이 합창을 이뤘다.

"싸나 헬와 야 자밀, 싸나 헬와 야 자밀~."(아랍어로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2시간 40분 동안 24곡을 선사한 멤버들은 사우디까지 온 기쁨과 대형 공연장을 채워 준 아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사우디에서 오늘 처음인데 너무 즐겁게 즐겨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와도 될까요? 정말 다시 와도 될까요?"(슈가), "다음에 또 여기 꼭 오고 싶고…우리 또 봐요"(뷔)

◇ "방탄소년단 만나 꿈 이뤄"…공연장서 살라 시간엔 기도

이날 열기는 공연장 밖에서부터 감지됐다. 아바야를 입은 여성들은 경기장 입구부터 긴 행렬을 이루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보랏빛 아바야로 애정을 나타내거나, "정국 오빠를 사랑한다"며 거침없이 표현하는 팬도 있었다. 또 다수가 한국 취재진과 만날 때마다 미소짓거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며 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리야드에 사는 슈르크(18)와 알리아(23) 두 여성은 "방탄소년단을 만나고자 한국에 가길 고대했는데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 꿈이 이뤄졌다"며 "이들을 만나면서 공부와 일, 의사소통에서 긍정적으로 변했다. 방탄소년단을 통해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성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노래를 부르자 삼삼오오 팬들이 모여들며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아마(26)와 샤하드(18) 양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보이그룹이 사우디에 와 있는 것도, 사우디 문화를 알게 된 점도 좋다"며 "사우디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팬층이 넓다. 사우디에 살지만 한국에서 돌아가는 일을 다 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슬람 문화권 특유의 풍경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루 5회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살라 시간(이날 오후엔 3시 1분, 5시 31분, 7시 1분)이 되자 일부 남녀 관객이 각각 공연장 내 마련된 카펫에서 절을 하며 기도했다.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는 예배 시간을 철저히 준수한다.

공연이 끝날 즈음엔, 저마다 토브를 입은 남성들이 자녀를 마중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날 공연장에는 알 리야드, 알자지라, 오카즈, 알 아라비아 등 아랍권 주요 매체가 참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