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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출입금지” 클럽들, 인종차별 논란

By Ock Hyun-ju

Published : April 10, 2019 -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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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밤 11시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한 유명클럽 앞. 주말을 맞아 클럽을 찾은 션 피켓(25)씨가 보안요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가 알고 있는 클럽 입장료는 1만5000원인데, 보안요원이 그에게 입장료로 2만원을 내라고 하면서다. 피켓 씨는 “나도 한국인인데 왜 5000원을 더 내야 하느냐” 물었다. 겉모습은 백인이지만 그는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냥 가라” 였다. 그의 여자친구가 다시 찾아와 따지자 클럽 측이 “백인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입장을 안 시킨다”고 했다. 피켓 씨는 “한국어로 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내 피부색깔만 봤다”며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국적의 30대 남성 A씨가 겪은 차별은 더 심했다. 피켓 씨가 갔던 바로 그 클럽이었다. “백인은 문제를 일으킨다“며 출입 자체를 거부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작년 가을에는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찾았던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노 프렌치(No French, 프랑스인 출입금지)라며 입장을 거부 당했다.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거주했다는 이 남성은 “왜 출입을 금지시키는지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건 노골적인 인종차별”이라며 “일부 백인이 문제를 일으켰을 수 있지만 모든 백인이 차별받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홍대 거리 (사진=코리아헤럴드 옥현주 기자) 홍대 거리 (사진=코리아헤럴드 옥현주 기자)

외국인 거주자 200만명 시대, 작년 한 해에만 한국을 찾은 외국인도 150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은 여전하다. 홍대, 이태원, 강남 등지의 유명 클럽을 찾는 외국인들은 특정 국적, 특정 인종이란 이유만으로 입구에서 출입을 거부 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피켓 씨가 한국 거주 외국인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자 다른 외국인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한국의 차별 문화를 비판했다.

인도 국적의 키슬라이 쿠마르 씨는 지난 2017년에 국내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도중 술집을 찾았다가 “인도인은 출입할 수 없다”며 입장을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친구인 프랑스인 두먼 얀 씨가 온라인에 공유한 영상에는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몽골, 사우디, 이집트 사람들은 안 된다. 그것이 규칙”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문제의 클럽 관계자들은 취재가 시작되자 “국적이나 인종을 이유로 출입을 거부한 적이 없다”며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우리 업소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입장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홍대의 한 유명 클럽 관계자는 “클럽 내부에서 제어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에 입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외국인들도 매너가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는 업소에서 출입금지 등 인종차별을 하더라도, 경찰이 나서거나 이를 규제 또는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진정서를 내 인권위가 권고를 할 수는 있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다. 지난 2007년 이후 국회에 인종차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어떤 국적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금지한다든지 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며 “외국인이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한국사람처럼 생겼지만 국적이 달라서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상업시설이다 보니 국가가 많이 개입할 수는 없지만 국가가 국내의 인종차별이나 선동 행위를 감시하고 모니터링할 책임은 있다”며 “인종차별은 사회통합에 부정적이며 사회적 비용, 처리비용이 높다. 인권국가라면 개선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내놓은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다문화수용성 지수는 53.95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외국인을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도 3명 중 1명 꼴인 31.8%나 됐다.

박경태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는 “비(非)백인,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국가 출신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더욱 심하기 때문에 백인에 대한 차별은 이슈가 되지 않아왔던 측면이 있다”며 ”인종을 불문하고 차별을 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가 인종차별주의자라기보다는 다른 문화권에 살아본 경험이 없어 이해의 정도가 낮고 거부 수준은 높은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인식 개선은 물론 제도 개선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도 제도 개선에 나선다.

인권위는 지난 1월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 법조계, 사회적 소수자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위원 25명으로 ‘혐오차별 대응 특별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상태다. 또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위한 실태조사 사업인 ‘한국사회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 범죄 법제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코리아헤럴드=옥현주 기자 (laeticia.oc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