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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100일 인터뷰] 김혜숙 이대총장, “절대다수 남성 정치권, 숨 콱 막혀”

By Bak Se-hwan

Published : Sept. 1, 2017 -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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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4차산업혁명시대의 산업패러다임에 충실히 대비해야”
“게임업계, 정치권 대부분이 남성…전문 기술 비대칭 극복해야”
“여자대학의 정체성 확립하는 것이 중요”
 


김혜숙(63•사진) 이화여대 총장이 2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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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눈물을 보였던 김 총장은 그간 새로운 ‘이화의 꽃’을 피우기 위한 다양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지난 100일간 김 총장은 ‘익명청원제’와 학생인권센터 설립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소통과 철저한 자기반성에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총장은 지난 5월26일 131년 이대 역사 최초의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같은 달 31일 취임했다. 취임식에서 김 총장은 “이대의 명예를 회복하고 우수한 여성 인재 발굴에 힘쓰는 등 여성종합대학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8일 취임 100일을 맞는 김 총장과 마주앉았다. 다소 긴장한 듯 경직된 표정의 그는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짤막한 말로 업무적 중압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취임전과 지금의 사회는 또 많이 달라져있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새 시대에 맞는 교육 대학 교육의 구조와 방향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 대학이 사회에 빚진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

‘교육 농단’의 스캔들을 온몸으로 맞아내며 ‘새 이화’의 선봉에 나선 김 총장에게 이화여대의 미래를 물었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사진=박현구 기자)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사진=박현구 기자)

-100일 취임 축하드린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시간이 어떻게 간 지도 모르겠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1년 전 사태가 빚어낸 양면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최대 현안이다. 하나는 과거 비리 대학으로서 받고 있는 각종 불이익을 어떻게 극복하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이화로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 갈 것인지. 또 다른 모습은 그 변화를 이끌었던 정의로운 학생들이다. 이번 사태로 이화의 가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공과대학이 엘텍(ELTEC) 공대로 개편된 지 1년이 지났는데
“엘텍 공대의 정착은 이대가 세계사에서도 역사적 발자국을 찍는 일이다. 지금 1년이 지났지만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교직원과 학생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빅데 이터, 3D 프린팅, 인공지능 등의 등장으로 디지털 문화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다.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4차산업혁명시대의 산업패러다임에 충실히 대비하기 위해 여성도 기술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사진=박현구 기자)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사진=박현구 기자)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여성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이미 수많은 직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 과거에 100명이 필요한 작업도 이제는 기계의 도움으로 한 사람이 처리한다. 기계가 못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 여성들은 그 동안 관료적 틀 안에서 배제돼 왔기 때문에 기존의 산업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사고방식, 양식 등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성은 각각의 상황과 감정에 따른 특성을 파악할 수 없는 기계적 알고리듬의 한계에 대응해 더 높은 차원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낼 것이다.”

-여자대학으로서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전세계 지식인 여성의 리더십, 정치참여 등의 기회가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학교 정체성 확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대의 국제화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탈북여성, 동포자녀들, 전세계 여성 소외계층 등을 이화글로벌파트너십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리더로 키워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 총장은 여자대학의 구조 속에서 구성원이 가질 수 있는 힘에 대해 강한 신념을 보였다. 그는 미래비전 공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흩어져서 일하면 집단화의 힘으로 나타나기 힘든데 이대는 미래 여성의 역할에 대한 비전을 서로 공유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대가 큰 만큼 쓴 소리도 이어졌다.

“게임업계 쪽만 하더라도 개발자 대부분이 남성이다. 특정 종류의 전문 기술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국가를 보더라도 근대에 들어와서야 여성운동, 인권운동 등을 지나면서 법적인 차원의 여성 인권이 개선되고 평등이 이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기술혁명을 따라가지 못하면 다시 주저앉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기술을 선점하지 않으면 여성은 2등 시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자 당시 ‘여성 장관 30%’ 공약을 내세울 정도로 여성의 정치참여 기회가 낮다. 정치는 여전히 ‘남성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김 총장의 의견을 물었다.

“뉴스를 보다보면 정치권의 절대다수가 여전히 남성이다. 숨이 콱콱 막힌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문화는 여성에게 배타적이다. 군대 등으로 남성 카르텔 문화가 상당히 발달돼 있다. 기혼 여성이 남성중심의 회식 문화에 새벽까지 어울려서 정보를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여성도 정치적인 꿈을 가지고 지역사회를 위해 일해보겠다는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공천을 주고 사람을 키우니 정치권이 발전하지 않는다.”

앞으로 전력을 다해 추진할 정책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새 총장의 임기는 2021년 2월28일까지다.

김 총장은 “공약을 지키려고 애를 쓰다 보니까 앞으로 그런 얘기는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며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김 총장은 그러나 곧바로 무거운 표정으로 “여자대학으로서 이 시대적 화두를 어떻게 넘을 것인지가 지속적인 숙제”라고 말했다.

코리아헤럴드=박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