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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요구 탈북자 “문재인 정부로 바뀌어 북한 귀환 희망 커져”

By Jo He-rim

Published : Feb. 12, 2018 -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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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년 동안 북에 가지 못하고 있다. 북측 형제들이 여권도 없이 왔다갔다 하는 게 아름답고 좋더라. 한발 짝 이라도 가서 고향 사람들 보고 싶었다. 북한 공연단이 내 딸 같았다. 마지막 가는 길을 바래주고 싶었다. 영영 못 만날까봐 두려움도 들었다.”

12일 오전 평창동계올림픽 축하공연을 마치고 북측으로 돌아가던 북한 예술단을 향해 “평양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집에 빨리 보내달라”라고 외치던 탈북자 김련희(48ㆍ여) 씨, 그는 이날 행사가 끝난 후 코리아헤럴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날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찾은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김련희 (연합뉴스 제공) 김련희 (연합뉴스 제공)

김 씨는 탈북한 2011년부터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남측으로 오게 됐다며 북측 송환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김씨의 북송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김씨가 탈북 당시 남한 국민이 되겠다는 서약서를 스스로 썼다는 것이다. 김씨를 북송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도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나의) 대한민국 국민 지위는 강제로 부여된 것”이라며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자신의 북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통일부에 문의한 여러 지인들을 통해 정부가 ‘나를 북한으로 보내면 북 정권이 (나를) 체제선전으로 이용할까 봐 못 북송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게다가 현재 탈북자가 3만명 있는데 선례를 만들어서 다른 탈북자들도 요구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1년 간 질환 때문에 치료비를 벌러 간 중국에서 탈북 브로커를 만났다. 남한에 두세 달 가서 큰 돈을 벌고 돌아올 수 있다는 탈북 브로커의 말에 혹해 남한으로 넘어왔지만 결국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만난 다른 탈북자들로부터 남한에 가서 일을 하려면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4개월을 족히 있어야 된다는 말을 들었을때는 여권이 브로커에게 넘어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태국 이민수용소에 지낼 땐 김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 씨는 ”이민 서약서엔 미국과 남한밖에 없어서 동포인 남한에서 사실대로 말하고 돌아오려했다”며  “남한에 오자마자 국정원 독방에서 한달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속아서 온 거라고 처음부터 북송을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가족과 떨어져 7년을 남한에서 보내온 김씨는 지난해 12월에서야 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북한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지인을 통해 서울에서 영상통화를 한 것이다. 외국인이 평양에 도착하면 평양에서 파는 유심칩을 사용하면 전 세계 어디든 연락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씨는 “몇 분 통화를 안했다. 아버지, 어머니 나오셔서 막 울더라. 7년만에 처음 얼굴을 봤다. 감격이었다”며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다. 설사 죽더라도 가족 곁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가 북한을 떠날 땐 17살이었던 딸은 벌써 24살이 됐다. 

김 씨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서 북송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김 씨는 “이전 정부보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였지 않나. 무참히 인권 짓밟히는 모습 보고 내버려두지 않을 것”며 “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또 “통일부가 송환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씨가 CIQ에 진입한 경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민통선 안에도 주민들이 계신다. 방문하려면 신원조회 뒤 주민이 와서 데리고 가야 하는데 오늘 신분증을 맡기고 합법적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는걸 제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리아헤럴드=조혜림 기자 / her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