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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문화부 전문가 토론회 열고 도입 본격 논의
유명작가 타계·문화재단 상속 때마다 이슈
진위 여부·가치평가 등 공신력 확보 관건
발제자로 나선 김소영 한미회계법인 회계사
“미술품 범위 명시…국민 향유가치 규정 필요”
지난 봄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아 문화예술계는 물론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현행 세법상 국가지정문화재에 관한 상속세는 면제되나, 재단을 운영하며 가중된 재정난을 소장품 판매로 해결하려 한 고육책이었다. 당시 경매에선 유찰됐지만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구매했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 전시전경. [ⓒ김광섭·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우리는 신화를 익히 들었다. 30년전에 불과 기 천 만원이던 작품이 이제는 수 십 억을 호가한다던가, 작품을 잘 샀더니 웬만한 투자보다 수익률이 좋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거기에 국가가 소장한 작품들도 더해진다. 프랑스 피카소 미술관의 경우, 정부예산 규모로 구입하기 힘들었던 미술품을 상속세 대신 ‘대물변제’를 통해 기증 받아 세기의 컬렉션을 자랑한다는 스토리다.

반대로, 멘트모어 타워(Mentmore Tower)스캔들도 있다. 영국 로스차일드가의 성지인 이곳을 소유했던 로브제리 백작(Lord Rosebery, 1882~1974)이 타계하자, 상속인이 2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타워를 공개매각한 것이다. 물납으로 상속세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정부가 ‘세수부족’을 이유로 거절하자 소더비가 일주일동안 경매를 진행한 것이다. 600만파운드 넘는 가격에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만약 영국정부가 물납을 받았더라면, 훨씬 남는(?) 장사였을 것이다.

상속세 물납제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는 유명작가의 타계, 문화재단의 상속 등 이슈가 있을 때 마다 꾸준히 문화예술계에서 요구해 왔던 정책이다.

가장 가까운 것은 올 봄 간송미술관이 각종 세금부담과 경영난에 불상 2점을 경매에 내 놓았던 일이 꼽힌다. 경매에서는 유찰됐지만, 지난 8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들였다. 2014년 타계한 김흥수 화백의 일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하모니즘 회화’의 창시자인 김흥수 화백이 세상을 떠나자, 국세청은 김화백 유작을 총 110억원 가량으로 감정하고 상속세 48억원을 부과했다. 유족은 상속세를 납부할 형편도 되지 못했고, 작품들이 흩어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2017년 한 재단에 유작 70여점을 기증했다. 현행 상속법에 따르면, 상속 문화재나 미술품을 기부하는 경우 기부금 전액에 대한 상속세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유족측은 “재단 이사장이 미술관을 건립하는 게 기증 조건이었다”며, 1년 뒤 이를 이행하지 않은 재단을 고소했다. 재단 이사장은 “조건 없는 무상 증여였다”라며 맞섰다. 두 케이스 모두 ‘물납’이 가능했다면 조용히 처리됐을 수도 있을만한 사안이었던 셈이다.

상속세를 물납으로 대신하는 제도는 그 아이디어만 보면 아름답다. 문화재와 미술품이 어디 가치를 손쉽게 산정할 수 있는 물건인가. 간송 전형필은 훈민정음 혜례본을 손에 넣을때, 거래가의 10배가 넘는 금액을 주고도 기뻐했다고 한다.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매길 수 없다)’라며 흐뭇해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무가지보들이 해외에 무분별하게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또한 국가는 별도의 비용을 내지 않고도 이같은 유물들을 소장할 수 있다. 사유재였던 작품들이 공공재로 전환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물납하려는 문화재와 미술품의 가치평가다. 국내에는 현재 이렇다 할 가치평가기관이 없다. 시장에서 인정하는 사설 기관이 몇 개 존재하지만, 같은 작품에 대해서 진위가 갈리거나 가치평가가 달라지는 등 공신력 확보가 관건이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으로 상속세를 물납할 경우, 조세심판에서 재감정이나 과세세액을 다시 조사하라는 경우도 다수 발행하고 있다. 문화재·미술품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더 빈번할 수 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작품 재평가를 위한 용역연구를 진행한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을 발표했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비록 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는 작가의 작품가격을 매기기 위한 기준이라고 하지만 학력과 전공을 가격산정에 반영해, 시대착오적이란 이유에서다.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김소영 한미회계법인 회계사는 “물납대상 미술품 범위를 명시하되, 국민 모두가 향유할 가치가 높은 미술품에 한해 물납이 가능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미술품의 가치산정 오류로 인해 국고에 손해를 미치게 될 가능성이 높기에 신중한 검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큰 틀에서 물납제에 동의하더라도, 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설정도 필요하다. 토론자로 나선 캐슬린 킴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는 “문화재·미술품의 상속세 물납제의 목표가 세금을 편하게 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문화권 향유인지에 따라 세부 정책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광재(더불어민주당)의원 등 20인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11월 25일 발의한 상태다. 상속세 납부시 재산으로 납부하는 물납제도를 허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문화재와 미술품을 더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부동산과 유가증권”으로 명기된 것을 “서화·골동품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미술품, 부동산 및 유가증권”으로 개정하는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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