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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서 성폭행하려 한 남성 살해 15세 소녀 처벌 논란"

By Yonhap

Published : Sept. 15, 2019 -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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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뒤 순결 검사 강제…여성에 불리한 사법체계 조명

이집트에서 자신을 납치해 성폭행하려 한 남성을 살해한 15세 소녀의 처벌 문제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고 AP통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소녀는 7월 남성 버스 운전사가 자신을 태우고 카이로 외곽 황무지로 납치해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려 했으나 그를 속여 그 흉기를 빼앗아 살해했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이집트의 여권 운동 단체는 이 소녀가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성범죄를 피하려고 불가피하게 선택한 정당방위였다면서 재판부에 선처를 요구했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또 재판부가 이런 중요한 판례를 남기면 성범죄 사건을 저지른 가해 남성보다 피해 여성을 더 비난하는 이집트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혐오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법원은 이 소녀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석방을 결정했지만, 검찰의 항고가 인용돼 구속 기간이 30일 더 연장됐다.

이 소녀의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이 소녀를 살인 혐의가 아니라 '명예 살인' 사건의 당사자로 다룰 것을 바란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명예 살인은 가족 중 여성이 성폭행과 같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남성 가족이 그를 죽이는 일로 정상이 참작돼 일반 살인보다 낮은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여성에도 이런 명예 살인의 법리가 적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AP통신은 또 이번 사건으로 여성의 순결에 집착하는 이집트의 보수적 풍토도 함께 조명됐다고 전했다.

이 소녀가 조사 과정에서 이른바 '순결 검사'를 강제로 받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소녀의 구명운동을 하는 카이로의 시민단체 대표 인티사르 사이디는 "순결 검사는 성폭행 관련 사건에서 이뤄지는 일상적인 과정이다"라고 비판했다.

AP통신은 "이집트에서 성범죄 피해 여성에 대한 순결 검사는 피해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고 인식된다"라고 전했다.

순결이 증명되면 정숙한 여성임이 밝혀져 성폭행의 피해자로서의 '온전한 조건'이 갖춰져 법적 처벌이나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 관념이 보수적인 중동에서는 사법부조차 여성이 정숙하지 못한 복장이나 언행 등이 성범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여성단체 나즈라의 창립자 무즌 하산은 "성범죄 피해 여성에 대한 순결 검사는 피해자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도구가 된다"라며 "이집트에선 미혼 여성이 성 경험이 있다고 밝혀지면 정숙하지 않은 여성으로 취급돼 성범죄를 당할만하다는 딱지가 자동으로 붙는다"라고 지적했다.

이 소녀가 조사 과정에서 '버스에 타기 전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했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이집트의 통념상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AP통신은 전망했다.

AP통신은 이집트에서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성추행이 만연하지만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남녀 대부분이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도발적으로 옷을 입기 때문'이라며 여성에 책임을 돌린다고 보도했다.

사이디 대표는 이 매체에 "내가 이 사건을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일부 남자 변호사들이 피해자가 정숙한 여성이 아니라며 공격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