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Herald

지나쌤

'냄새 없는 고기' 만들려고 생살 뜯기는 새끼돼지

EU는 '마취 없는 거세' 금지

By Yonhap

Published : May 19, 2019 - 09:14

    • Link copied

"누군가가 먹는 고기가 목이 찢어지라고 비명을 지르며 비참한 삶을 살다 죽은 동물이라면 그 누군가는 고기를 맛있게 목으로 넘길 수 없지 않을까요"

채희경 동물 칼럼니스트는 지난 8일 네이버 포스트에 '고기 냄새(웅취)' 제거를 목적으로 수컷 돼지에게 자행되고 있는 마취 없는 물리적 거세를 비판하는 글을 써 네티즌의 공감을 받았다.


채희경 칼럼니스트 네이버 포스트 캡처. 원 출처 Eurogroup for Animals 채희경 칼럼니스트 네이버 포스트 캡처. 원 출처 Eurogroup for Animals

채씨는 '냄새 없는 고기가 되기 위해 새끼돼지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마취법이 개발되기 전이던 19세기 초에는 외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결정만으로도 공포심에 자살을 선택하는 일이 심심치 않았다고 하고, 마취법의 개발 이후에는 마취와 외과 수술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한 세트가 되었는데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는 '고기'들의 일상에서는 그 고통이 여전히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닭은 태어나자마자 부리가 잘려나가고 돼지는 꼬리와 이빨이 잘려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태어난 지 일주일 정도 된 수컷 돼지는 고기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거세를 당하는데 여기에서 마취 절차는 생략된다"며 "새끼 돼지의 고환은 살짝 칼집이 난 채 그대로 인간의 손에 뜯긴다. 이 순간 작은 돼지는 농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처절한 비명을 질러댄다"고 고발했다.

채씨는 18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수의사법이 원칙적으로는 수의사가 아닌 사람에 의한 동물에 대한 진료나 처치를 금지하고 있지만 예외 조항으로 '자가 치료', 즉 농장주가 자신이 기르는 가축에 대해 처치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의사법 예외 조항으로 일반인인 농장주의 처치를 허가하다 보니까 돼지 농장에서 비용이 드는 마취를 생략한 채 물리적 거세를 한다는 것. 주사량에 대한 판단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마취는 수의사만 할 수 있다.


밀집 사육 시 서로 공격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부리가 잘린 닭의 모습[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 캡처] 밀집 사육 시 서로 공격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부리가 잘린 닭의 모습[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 캡처]

채씨는 칼럼에서 "가축들이 일일이 수의사의 진료를 받으면 고기 생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동물들의 끔찍한 비명을 모른 척 하는 것"이라며 "상처 소독이나 연고 바르기 등 간단한 처치까지 모든 것을 수의사에게 맡기자는 것이 아니라 가장 끔찍한 고통이라도 막도록 수의사법을 개정해 동물에게 행하는 마취 없는 외과적 처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씨의 칼럼에는 다수 네티즌이 지지 댓글을 달았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네이버 이용자 jazz****는 댓글에서 "몰랐던 사실들에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고, shs7****는 "생명을 죽여야만 얻어지는 음식이라면 조금이라도 윤리적으로 얻어지면 좋겠다"고 동조했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 강정미 활동가는 "유럽연합(EU)에서는 브뤼셀 선언의 채택으로 지난해 1월부터 돼지의 외과적 거세가 금지되었다"고 전하며 "거세를 하더라도 수의사를 통한 마취로 동물의 고통을 줄여줘야 하는데 돼지나 닭을 '싼 고기'로 인식하고 생산단계부터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는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양돈업계는 마취 없이 거세당하는 새끼 돼지들의 고통을 경감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공감하면서도 마취를 의무화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는 입장이다.

대한양돈협회 관계자는 "고기를 소시지 등 주로 가공육의 형태로 섭취하는 유럽의 경우 고기 냄새 걱정이 덜해 거세를 않고도 돼지를 키울 수 있지만 주로 생고기를 구워 먹는 식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고기 냄새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가 워낙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수컷 돼지를 거세해야 하는 점이 있다"며 "또 전국에서 길러지는 수많은 돼지를 거세하는 데 수의사가 일일이 입회하기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양돈 농가뿐 아니라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양돈 농가도 마취 없이 새끼 돼지를 거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복지 정책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으려면 생후 7일이 지난 새끼 수컷 돼지는 수의사의 손에 의해 거세를 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거세 과정에서 마취를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새끼 수컷 돼지가 겪는 고통에 대해 "우리나라 농장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주사 마취를 수의사가 일일이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한번에 다수의 동물 마취가 가능한) 가스 마취를 방법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