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Herald

피터빈트

英 '한국인 유학생 폭행' 1년 2개월 됐는데…가해자들 거리 활보

영국 내 증오범죄 급증…한국인 대상 범죄도 증가해 '주의 필요'

By Yonhap

Published : Dec. 12, 2018 - 09:34

    • Link copied

지난해 10월 중순, 영국 남부 도시 브라이턴 중심가를 지나가던 한국인 유학생 A씨(당시 20세)는 영국인 10대 2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A씨 얼굴을 샴페인 병으로 가격했고, A씨는 치아가 부러지는 등 큰 상해를 입었다.

이들은 A씨에게 인종차별적인 말과 몸짓을 했고, 이후 말다툼 과정에서 갑자기 A씨를 폭행했다.


런던 재외동포 안전간담회 (연합뉴스) 런던 재외동포 안전간담회 (연합뉴스)

브라이턴을 관할하는 서식스경찰은 며칠 후 인근에 사는 17세와 16세 용의자를 검거했다.

사건 발생 1년 2개월이 지난 현재 불구속 상태인 용의자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 중이다.

조사에 수개월을 소요한 영국 경찰은 최근에야 사건을 검찰(CPS)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재판이 열린다 하더라도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형사사건에서 피해자가 핵심 증인(key witness)이기도 하다.

A씨가 군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면 피해자이자 핵심 증인이 동시에 없어지는 만큼 재판이 판결 없이 종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 현지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A씨는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악몽을 꾼다.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잊을만하면 영국 경찰에서 재진술을 해달라거나 답변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기억을 지우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A씨는 "시간이 지나면 저도 군대를 가야 하는데 그러면 저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들이(가해자들이)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A씨에 이어 지난달에도 런던 최중심가인 옥스퍼드 서커스 거리에서 또 다른 한국인 유학생 B씨가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10명 가량의 청소년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청소년들이 길을 걷던 B씨에게 쓰레기를 던지며 시비를 걸었고, B씨가 이에 항의하자 바닥에 쓰러트린 뒤 구타했다.

B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런던 경찰은 출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직 가해자들이 잡히지 않으면서 인종차별 폭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 英 내 인종차별 등 증오범죄 급증…한국인 대상 범죄도 늘어

이처럼 한국 교민과 주재원, 유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인 대상 범죄도 늘어나자 주영 한국대사관은 11일(현지시간)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재외동포 안전간담회'를 개최했다.

영국 내 한국인 대상 범죄 증가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박현수 주영 한국대사관 외사관에 따르면 영국 내 한국인 범죄 피해는 2015년 347건에서 2016년 364건, 2017년 467건으로 급증한 뒤 올해는 12월 현재 500건을 넘었다.

이중 60% 가량인 365건이 여권분실 또는 여권 절도이지만, 강도(4건), 폭행(5건) 등의 강력범죄는 물론 절도(20건), 사기(24건) 등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물론 영국 내에서 한국인을 특정해 범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대사관 측의 설명이다.

인구 6천600만명인 영국, 그중에서도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방에서 지난해 발생한 범죄는 모두 562만건이다.

인구 5천100만명 가량인 한국의 지난해 범죄 발생건수가 166만건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영국의 범죄발생 횟수가 훨씬 많은 셈이다.

지난해 영국 내 살인사건은 719건, 런던에서만 120건이 발생했다. 역시 한국(전체 245건, 서울 40건)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런던 내에서 칼 등 흉기 범죄가 급증하자 영국 경찰은 최근 검문 검색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한 여론조사 결과 영국 국민의 25%는 밤거리를 다니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종차별을 포함한 증오범죄 역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7∼2018년 1년간 영국에서 발생한 증오범죄는 모두 10만101건으로 전년 대비 18% 급증했다.

이중 4분의 3이 넘는 76%가 인종과 관련한 증오범죄였다.

영국 내 증오범죄는 2013∼2014년 4만4천577건에서 2014∼2015년 5만4천868건으로 늘어났고, 이어 2015∼2016년 6만5천500건, 2016∼2017년 8만4천597건으로 급증했다.

또 다른 주제발표자인 옥스퍼드대 박사과정 재학생인 조호희씨는 "2016년 브렉시트(Brexit) 결정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브렉시트가 이민 노동자에 대한 반감 등으로 결정된 것처럼 이때를 전후해 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면서 "단순히 아시아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범죄라기 보다는 영어를 못하거나 지리에 어두운 외국인 전체에 대한 범죄"라고 분석했다.

◇ 인력부족 英 경찰 도움 쉽지 않아…"다툼 최대한 피해야"

문제는 막상 영국 내에서 범죄 피해를 입어도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경찰 등 공권력의 도움을 받기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날 '증오범죄 등 피해 시 법절차의 이해'를 주제로 발표한 조은영 영국 변호사는 영국 경찰이 예산 감소 등으로 자원이 부족한 바람에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즉각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조 변호사는 "영국 경찰에 있어 작은 폭행 사건은 (처리) 우선순위에서 굉장히 밀린다. 경찰에 신고한 이후 몇달이 지나도 진전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사건 현장에서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인력이 부족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과 달리 쌍방폭행의 경우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서로 간의 다툼으로 간주해 조사를 종료하는 등 경찰이 제한된 인력과 자원으로 인해 큰 상해 등이 없으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조 변호사는 전했다.

이에 따라 교민이나 유학생 등이 폭행이나 다른 범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을 경우 안전을 위해서 최대한 빨리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 변호사는 조언했다.

영국에서도 정당방위를 인정하지만 상황과 위협 정도에 맞는 무력 사용만 가능한데다, 법원에서 어떻게 결정할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만큼 본인이 직접 대응하기 보다는 피하는 것이 낫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아주 긴급한 상황일 때는 999번으로, 위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101번으로 신고를 하면 접수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화를 입을 경우에는 아예 주변에 경찰관을 바로 찾는 것이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수 외사관은 "영국 뿐 아니라 해외에 있을 때는 '해외안전여행'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위기 시 연락 가능한 번호를 안내받을 수 있다"면서 "위기상황별 대처 매뉴얼도 확인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재한 선남국 주영 한국대사관 총영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런던에서 한국인 유학생 폭행 사건 등이 발생, 이번 간담회를 마련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교민, 유학생 단체 등과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협업을 강화해 우리 국민의 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소통하고 필요한 사항은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