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으로 돌아온 추상미 "개인과 역사의 상처, 선하게 쓰였으면"

  • Published : Oct 16, 2018 - 09:48
  • Updated : Oct 16, 2018 - 09:59

배우 추상미(45)가 감독으로 복귀했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추상미는 15일 시사회 이후 간담회에서 "20년 동안 배우로 활동하다 이제 첫 작품을 낸 새내기 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낸 1천500여명의 전쟁고아와 이들을 8년간 부모처럼 돌본 폴란드 교사들의 실화를 쫓는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추상미는 "우연히 한 지인 출판사에 갔다가 이야기를 듣고 극영화로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추상미는 북한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영화 '그루터기들'을 준비 중이다. 극영화에 앞서 공개된 이 다큐멘터리는 추상미가 폴란드 현지로 가서 만난 폴란드 교사 등의 증언 등을 담았다.

추상미는 "극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려던 차에 폴란드와 접촉해보니, 아이들을 돌본 분들의 나이가 현재 80대 후반 또는 90대였다"면서 "이분들의 증언과 육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폴란드행에는 '그루터기' 주연으로 뽑힌 탈북 소녀 이송도 함께 했다.

전쟁고아들은 폴란드 서부 도시 브로츠와프 근교 작은 마을인 프와코비체에 마련된 양육원에서 생활했다. 추상미가 만난 당시 양육원 원장을 비롯해 생존 교사들은 지금까지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

처음 아이들이 기차역에 내렸을 때 얼굴조차 구분 못 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게 했다. 아이들은 낯선 이들의 환대에 차츰 마음을 열며 낯선 땅에서 생활에 적응해갔다. 전쟁 상처를 딛고 즐거운 추억을 쌓아나가던 이들은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 시작되면서 8년 뒤인 1959년 전원 북한으로 송환됐다.

폴란드 교사들은 왜 머나먼 타국에서 온 아이들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것일까. 폴란드 여정을 마친 추상미는 "상처의 연대"라는 말로 해석한다. 폴란드인들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군에 많은 핍박을 당한 역사가 있다. 실제로 고아들을 돌본 양육교사 상당수도 전쟁고아 출신이었다.

"이 영화에는 많은 상처가 나옵니다. 저는 상처를 새롭게 조명하는 관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개인의 상처이자, 역사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는 데 선하게 사용한 것처럼,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상처도 증오와 어떤 프레임,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게 아니라 선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역사 뒤편에 숨은 아이들 이야기는 폴란드 언론인 욜란타 크리소바타가 폴란드 한 공동묘지에서 '김귀덕'이라는 묘비명을 발견하고 그의 삶을 추적해 방송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폴란드에 온 전쟁고아였던 김귀덕은 백혈병에 걸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후 2006년 폴란드 공영방송 TVP가 다큐멘터리 '김귀덕'을 방영했다. 추상미는 현지에서 욜란타 크리소바타를 만나 1천500여명의 아이 중 절반은 남한에서 온 아이들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듣게 된다.

그렇다면 폴란드에서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추상미는 "제가 아는 것은 북한으로 간 아이들은 폴란드어와 러시아어가 능통해 대부분 엘리트 그룹을 형성했다"면서 "어른이 된 뒤 영사나 교수가 돼 폴란드로 다시 가신 분들도 있고, 한국에 온 탈북민 가운데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연극배우 고 추송웅 딸인 추상미는 영화 '생활의 발견'(2002),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와 드라마 '사랑과 야망'(2006), '8월에 내리는 눈'(2007)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렸다.

그러다 2007년 뮤지컬 배우 이석준과 결혼했고, 4년만인 2011년 아들을 얻었다. 2009년 드라마 '시티홀'을 끝으로 연기 생활을 접고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한 그는 2편의 단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배우 활동을 하면서도 늘 영화 연출을 꿈꿨어요. 배우였을 때는 그 역할이 되기 위해 외부와 단절하고 혼자 침잠해있던 시간이 많았어요. 세상과 많이 분리된 느낌이었죠. 감독이 돼보니 세상을 보는 시선도 자유롭게 열리고, 사회적 이슈에도 민감해졌죠. 타인과 제가 연결돼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추상미는 이 작품 연출을 통해 우울증도 극복했다. "늦은 나이에 새 생명을 얻다 보니 산후 우울증이 왔어요. 아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왔죠. 그러나 시선이 고아들 쪽으로 바뀌면서 건강하게 극복이 됐습니다. 모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발휘될 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됐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