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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취미로 축구하는 이야기 "빠져드네"

By Yonhap

Published : June 12, 2018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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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출간

"여러 면에서 '여자가 취미로 축구하는 이야기'는 그 유명한 '남자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의 정반대 편에 서 있는 것 같은데, 특히 희소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에서 축구라는 운동이 여자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유독 축구는 어려서부터 남자들만의 운동이었다."

김혼비 씨는 최근 펴낸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민음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인 성인 여성들에게 학창 시절 축구를 해본 경험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대부분 저자처럼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자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만은 없음을 의식하게 된다.

"공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남자들에게는 축구, 여자들에게는 발야구나 피구를 시켰다. 발야구나 피구라니. 생각할수록 참으로 애매한 운동 아닌가. (…) 축구가 바둑이라면 발야구는 오목 정도의 느낌이고 피구는 알까기 정도? 공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사건들 중 던져서 사람 맞춰 내보내기라니. 바둑알 튕겨 맞춰 내보내는 알까기의 정신과 다를 게 뭔가." (31쪽)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유난히 좋아했던 김 씨는 축구를 직접 할 기회가 없었음에도 축구에 일찍이 매료됐다.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호나우두의 현란한 '스텝오버'('헛다리 짚기')를 보고서였다. TV로만 보던 경기를 축구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나서는 'K-리그'에 빠져들었고, 이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직접 여자축구팀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사회적인 통념으로 보면 취미로 축구를 하는 여자들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는 많다는 사실에 저자도 놀란다. 이 여자들은 대체 어떻게 취미로 축구를 하게 됐을까. 저자처럼 축구의 열렬한 팬이었다가 직접 뛰어들었을 것으로 추측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축구팀에 갑자기 결원이 생겼다며 자리를 메워달라는 지인의 부탁으로 얼떨결에 축구장에 나왔다가 붙박이가 된 '길거리 캐스팅'이 가장 많고, 아들을 축구교실에 데려다주다가 아들 감독의 제안으로 여자축구팀에 합류한 경우도 있다. 학창시절 축구선수 경력이 있는 이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선수 출신을 제외하면 대부분 축구의 ABC도 모르던 여자들인데, 축구공을 발에 댄 이후에는 축구에서 떨어지지 못한다. 저자는 이 평범한 여성들과 함께 축구를 하면서 '진짜 축구'를 몸으로 배우게 된다. 이 책은 그 땀과 환희, 눈물, 생활의 기록이다.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43쪽)

축구를 하게 되면서 저자는 기본기 하나 익히는 데 몇 달을 보내고, 막상 연습경기에 들어가서는 모든 게 엉켜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맛보기도 하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호흡 곤란 상태로 뛰며 정강이를 수시로 걷어차이기도 하고, 팀 전력에 도움은커녕 피해만 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축구의 오묘함에 점점 더 빠져든다. 종아리에 알통 근육이 박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헤어스타일은 무조건 축구하기에 편하도록 잘 묶이는 머리를 고집한다.

축구도 사람의 일인지라 팀 내에 갈등이 고조되기도 하고, 연습경기로 자주 만나는 다른 팀과 크게 싸우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모여 축구의 다채로운 무늬를 만든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이 축구팀이 자기들 실력은 꽝이면서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자꾸만 결점을 지적하고 가르치려 드는('맨스플레인'하는) 남자팀에 맞서 완벽한 로빙슛("공의 밑동을 톡 찍어 차서 골키퍼의 키를 살짝 넘기는 높고 느린 슛")으로 입을 막아버리는 장면은 특히 재미있다.

"그날 이후 회사나 일상에서 맨스플레인하려 드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주장의 슛이 떠올랐다. 살면서 본 가장 의미심장한 슛이 아니었을까?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매우 명확했다. '나의 킥은 느리고 우아하게 너희들의 '코칭'을 넘어가지.' 느리고 우아하고 통쾌했던, 잊지 못할 로빙슛! 러빙슛!" (60쪽)(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