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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세돌, 다시 한 번 증명한 승부사 기질

By Yonhap

Published : Jan. 14, 2018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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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전적 등에서 열세…가족 앞에서 접전 끝에 강렬한 승리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2018 해비치 이세돌 대 커제 바둑대국'은 이세돌 9단의 타고난 승부사 기질이 여실히 드러난 무대였다.

제주도 해비치호텔의 문화행사로 마련된 이 대회는 언뜻 중국랭킹 1위인 커제 9단에게 유리해 보였다.

상대 전적과 나이, 랭킹 등을 고려했을 때의 평가였다.

1983년생 이세돌 9단과 1997년생 커제 9단은 큰 무대에서 유독 자주 마주쳤다.

세계 메이저대회 몽백합배 결승과 삼성화재배 준결승, 국가대항전인 농심배 결승국 등 주목받는 자리에서 대결했다.

그런데 번번이 커제 9단이 승리했다.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의 상대전적에서 이세돌 9단은 3승 10패로 크게 밀렸다.

하지만 반대로 이세돌 9단이 승리한다면 기존의 열세 이미지를 뒤집을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이세돌 9단도 이런 상황을 인식한 듯 대국 전 개막식에서 "커제 9단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임전 소감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세돌 9단의 아내와 딸도 개막식에 참석해 가장의 각오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세돌 9단의 가족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제주도는 이세돌 9단의 새로운 터전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은 자신의 터전에서 숙적 커제 9단에게 어느 정도 빚을 갚는 데 성공했다.

치열한 접전 끝에 293수 만에 흑 1집 반 승을 거둔 것이다.

약 14개월 만에 이뤄진 둘의 맞대결은 내용도 극적이었다.

초반 주도권은 흑돌을 집은 이세돌 9단이 가져갔다. 백을 가져간 커제 9단은 국 후에 스스로 초반에 잘 두지 못했다며 후회를 남겼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은 우변 흑 117수에서 큰 실수를 했다. 흐름은 백으로 넘어갔다.

이세돌 9단은 특유의 흔들기로 우하귀에서 혼전을 만들며 버텼다.

이번에는 커제 9단이 흔들렸다. 그는 이세돌 9단의 실수를 기다리며 기회를 엿봤지만, 오히려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고 돌아봤다. 사이버오로 해설자로 나선 신진서 8단은 백 196수가 사실상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이세돌 9단은 완벽한 마무리로 커제 9단을 제압해냈다.

커제 9단은 막판 밀리는 상황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대국 후 커제 9단 쪽 바둑판 주변에 상당한 머리카락이 빠져 있었다는 후문이다.

해설자로서 막판 대접전을 대국장 안에서 직접 지켜본 이희성 9단은 "이세돌 9단의 집중력이 남달랐다"며 "대국 내용을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공기를 보고 이세돌 9단이 이기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성룡 9단도 "이세돌 9단이 오늘만큼 재밌게 바둑을 둔 적이 없었다"며 드라마 같았던 명승부에 찬사를 보냈다.

불리한 위치에서 강렬한 한 방을 날린 이세돌 9단 덕분에 대회는 흥행에 성공했다.

사실 우승 상금 3천만 원 등 대회 규모와 비교하면 이번 대국에 쏠린 관심과 집중도는 기대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수억 원의 상금이 걸린 바둑 메이저대회 결승 대국도 실시간으로 국내 주요 포털 검색어를 장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은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정식으로 맞붙은 프로기사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기에 더욱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