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Herald

지나쌤

'여행가방 벽 세우고 모포 덮고' 제주공항서 2천500명 새우잠

By Yonhap

Published : Jan. 12, 2018 - 09:28

    • Link copied

폭설로 온종일 항공기 운항에 차질을 빚은 제주공항은 12일 새벽 마치 피난민 대피소와 같은 풍경이 연출됐다.

2천명이 훨씬 넘는 체류객들이 2∼3층 여객터미널 구석이나 설치물 곁에 자리를 깔고 누워 '노숙 아닌 노숙'을 했다.

강풍과 폭설로 무더기로 결항한 제주공항 항공편 이용객들이 12일 새벽 제주도와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가 제공한 매트리스와 담요를 활용해 새우잠을 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풍과 폭설로 무더기로 결항한 제주공항 항공편 이용객들이 12일 새벽 제주도와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가 제공한 매트리스와 담요를 활용해 새우잠을 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날 항공편 결항으로 고향 대구에 가지 못한 김모(24)씨도 제주도 등에서 지급해 주는 모포와 매트리스를 받고 터미널 한편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청했다.

그는 "공항에서 노숙하는 처지가 됐지만 이런 지원을 받아서 마음만은 따뜻하다"고 말했다. 그는 12일 오전 일찍 출발하기로 된 항공편으로 대구에 가지 못하면 예정된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 없게 된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지쳐 쓰러진 제주공항 어린이 체류객 (사진=연합뉴스) 지쳐 쓰러진 제주공항 어린이 체류객 (사진=연합뉴스)

체류객들은 온종일 기다리느라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들의 질문과 사진 촬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체류객들이 많았다.

유모(40·경북)씨는 "전날 오전 항공기 수속을 끝내고 2시간가량 기내에서 기다렸는데 결항해 다시 내렸다"며 그 이후 12시간 이상 공항에서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다.

5∼6세로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청사 구석에서 모포를 덮고 잠을 청했다.

한 아버지는 모포를 지급하는 제주도 측에 고맙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줄을 서지 않으면 모포 등을 지원하지 않는 원칙 때문에 어린아이까지 줄을 서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제주도가 준비한 모포·매트리스가 거의 동나면서 이를 받지 못한 체류객도 발생했다.

도 당국은 "2세트 이상 받은 체류객에 대해 반납해 달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지급품을 채 받지 못한 체류객에게 나눠줬다.

모포 등 지원 물품을 받으려는 체류객들이 일시에 몰리면서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여러 물품이 비슷한 곳에서 지원되면서 사람들로 엉켜 '어디에 서야 받을 수 있는 것이냐'며 혼란스러워하는 체류객도 있었다.

도 당국은 체류객 지원 매뉴얼을 '경계' 단계로 설정했다가 체류자들이 많아지면서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경계단계는 청사 내 심야 체류객이 500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발령된다. 심각은 이보다 많은 1천명 이상 체류객이 발생하는 경우다.

그에 따라 매트리스·모포 2천700세트, 생수 7천500병 등을 체류객에게 지원했다.

또 택시들이 공항에서 시내로 체류객들을 수송하도록 협조를 요청했고 무료 셔틀버스를 투입, 숙소로 가려는 결항편 승객들을 태웠다.

강풍과 폭설로 항공편이 무더기로 결항해 제주공항에서 발이 묶인 관광객들이 11일 밤늦게 숙소로 가기 위해 제주도가 마련한 무료 셔틀버스에 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풍과 폭설로 항공편이 무더기로 결항해 제주공항에서 발이 묶인 관광객들이 11일 밤늦게 숙소로 가기 위해 제주도가 마련한 무료 셔틀버스에 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주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 체류객들이 늘어난 데에는 전날 저녁 시간대와 심야에 운항하려던 대형 항공사의 대체 투입 항공편과 정규 편 등이 대거 결항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1일 오후 7시 30분부터 자정까지 대한항공은 출·도착 기준 14편을 결항 조치했고, 아시아나항공도 12편을 무더기로 결항했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등 대형 항공사들은 또 결항 소식을 항공기 출발 1시간도 채 안 남기고 휴대전화 문자 등으로 승객들에게 알렸다.

이로 인해 항공편이 이륙하는 줄 알고 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이 대거 밤을 지새우는 신세가 됐다.

제주공항 3층 여객터미널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운 김모(58·서울)씨는 꿈같은 가족 여행을 마치고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전날 오후 9시 10분께 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항공기가 결항하는 바람에 졸지에 공항에서 노숙했다.

그는 "출발 시각을 1시간 정도 앞두고 공항에 도착하고서야 항공편이 결항한다는 연락을 받게 돼 공항 체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기 편으로 이날 오후 9시께 김포로 가려던 강모(56)씨도 "출발 예정 30분 전인 8시 30분께야 결항 안내 문자를 휴대전화로 보내왔다"며 "공항에 나왔다가 결국 헛걸음을 하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는 11일 오전부터 12일 오전 1시 30분까지 출발 114편, 도착 123편 등 총 237편이 결항했고 18편이 회항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135편은 지연 운항했다.

폭설로 활주로가 두 번이나 폐쇄됐던 제주국제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오후 9시 30분을 넘어서도 계속돼 항공기들이 이륙하려고 활주로로 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폭설로 활주로가 두 번이나 폐쇄됐던 제주국제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오후 9시 30분을 넘어서도 계속돼 항공기들이 이륙하려고 활주로로 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주도 등은 공항에서 밤을 지새운 체류객이 2천500명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