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Herald

지나쌤

"독자 줄었어도…'상품'보다는 '문학' 하고 싶다"

By KH디지털2

Published : May 28, 2015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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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해이수(42)와 중국의 옌거(顔歌·31), 두 나라에서 문학의 새 흐름을 주도하는 젊은 소설가가 만났다. 25∼26일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에서 열린 제9차 한중 작가회의에 참석한 두 작가가 청두시 바진문학원에서 대담했다.

2000년 '현대문학' 중편 부문으로 등단한 해이수는 작품집 '캥거루가 있는 사막 '과 '젤리피쉬'로 주목받았고 올해 첫 장편 '눈의 경전'과 두 번째 장편 '십번기'를 연달아 펴냈다.

중국의 여성 소설가 옌거는 10대 때부터 책을 내며 관심을 얻었으며 젊은 나이에도 벌써 10권의 소설을 펴낸, 중국의 '잠재력 있는 신인상'을 받은 작가다.

두 사람은 모두 작가가 된 과정이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해이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읽고, 쓰고, 마시고, 얘기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작가가 돼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문학 교사였다는 옌거는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글쓰기였고, 17세에 첫 책을 썼다.

그저 글 쓰는 것이 좋아 집필에 몰두하는 두 작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독자 수는 쪼그라들었고, 문학도 세계화의 요구를 받게 되면서 작가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 청송에서 열린 제8차 회의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만나는 이들은 양국 문학계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작가로서 고민을 털어놨다.

"이번 작가회의에서 낭독 작품으로 고른 '리키의 화원'은 TV 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을 소재로 해요. 이 소재를 잡은 건 한국문학이 어떻게 국경과 언어를 넘어서 여러 나라의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왔어요. 장애물 넘기 라는 소재는 어디든 있거든요."(해이수)

"중국도 한국처럼 책 사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일부 작가는 먼저 소설을 시나리오로 쓰고, 드라마나 영화가 성공한 다음에 다시 단행본으로 내요. 어떤 작가는 인터넷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클릭 수에 따라 원고료를 받아요. 하지만 이건 진정한 문학이라기보다 문학 주변에서 나오는 '상품'이 아닐까요."(옌거)

이들은 작가의 존재가 변한 것을 체감한다. 해이수는 "선배 작가들은 사회문제의 진단자이자 길을 알려주는 선지자적 역할을 했지만, 지금 작가는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는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고, 좋게 말하면 부담에서 벗어났어요. 견장이 없으니 목에 힘을 줄 필요가 없죠. 그런데 아직도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은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말로 하면 문학적 순수성을 견지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온한 거죠."(해이수)

"저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인터넷에 소설을 발표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해외에서 책을 판매하는 것을 주요 수익으로 삼아요. 제 생각엔 각 나라 문학시장이 전부 축소되서 작가들은 세계로 나가서 독자를 얻는 것이 불가피해요. 국경을 넘는 것, 이것은 한국과 중국 작가들 모두 비슷하게 고민하는 부분 같습니다."(옌거)

두 사람은 국내 독자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세계적으로 읽히는 작품을 쓸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옌거는 해이수에게 "세계의 독자를 건드리도록 작품에서 한국 고유의 정서를 강조하는 방식이나,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유럽·영미 문학과 비슷한 흐름의 작품을 쓰는 것 가운데 어떤 길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해이수는 두 요소를 결합한 '글로컬리즘'을 이야기했다.

해이수는 "동양적인 내용을 서양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은 조금 더 보편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시간과 국경을 떠나 모든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잊지 말고 지켜야 할 것을 문장에 담아내는 사람'"이라며 "결국 동양적인 것, 서양적인 것의 구분은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문학 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이들은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치열하게 고민하더라도 진심을 담은 문학을 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일반적인 문학 전통에서 젊은 작가는 윗세대 작가나 평론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저는 우리 세대의 작가와 독자에게서 공명을 일으키고 싶어요."(옌거)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으로 요약하고 싶어요. 스스로 밝혀서 세상의 진리를 밝힌다는 얘기죠. 젊은 작가로서 저는 스스로 조금 더 밝게 타올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변을 밝히고 싶어요. 기대거나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밝혀서 주변을 밝히는 소설가가 되고 싶습니다."(해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