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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없는 정부 ‘육아돌봄 서비스’에 부모, 돌보미 모두 고통

By 옥현주

Published : March 18, 2015 -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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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서 3명 (각 10, 7, 5세)의 어린 자녀들과 생활하는 싱글대디 석모 (40) 씨는 2년 전 희귀성 뇌질환인 소뇌성 운동 실조증 판정을 받았다.

걷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진 석씨는 그동안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를 거의 매일 이용했다. 낮에는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아이돌보미에게 식사와 숙제 보조 등을 맡겨왔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연합)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연합)

그러나 올해 아이돌봄사업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석씨는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방치’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서비스 이용 시간이 연 720시간에서 480시간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1년간 매일 돌봄서비스를 이용한다고 치면 하루에 약 1시간 30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다.

줄어든 이용시간으로 인해 필요한 병원 치료까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석씨는 “평일은 그렇다 쳐도 주말이 제일 힘들다”며 “나는 요리는 커녕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서 집에 같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이번 예산 삭감은 정부가 사실상 애들을 방치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관성 없이 실행한 유사, 중복사업 통폐합으로 인해 고통받는 맞벌이, 한가정 부모, 그리고 돌봄 종사자들이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자가 2007년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급증하고 있음에도 (2014년 50,000 가구 돌파) 방과후 학교 돌봄교실 등이 확대됐다는 이유로 올해 예산을 삭감했다.

대구에서 ‘투잡’을 뛰고 있는 맞벌이 엄마 정모 (36) 씨는 갑자기 줄어든 이용 시간으로 인해 2개 직장 중 하나를 그만둬야 할 상황에 처했다. 4살배기 딸아이를 둔 정씨는 낮에는 방과 후 교사로, 매일 새벽 4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세차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주로 집에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에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왔다.

부모와 시부모 모두 고령으로 인해 육아를 도와주기 힘들다는 정씨는 “(세차장) 일을 그만두거나 민간 회사에서 돌보미를 구해야 한다. 새벽 4시에 일할 돌보미를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비용도 걱정이다”며 “일을 그만두든, 돌보미를 추가로 구하든 달마다 약 60만원 정도의 추가지출이 생기게 됐다. 맞벌이, 투잡벌이를 하지 않고는 생활이 힘들다. 연장 보육이 있다고는 하지만 새벽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한 나 같은 사람은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올해 예산 삭감은 이용자 가정 뿐만이 아니라 돌보미들에게도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이용 시간이 1가구당 480시간으로 줄어든 데다가 작년 9월 정부가 예산 삭감을 이유로 교통비 지급까지 중단하는 바람에 수입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아이돌보미들은 현재 가사노인돌보미, 장애인 활동 지원 돌보미 등 정부에서 운영하는 돌봄 서비스 종사자 중 가장 낮은 시급 (6,000원) 을 받고 있다. 낮은 임금에 교통비마저 삭감되면서 월 10에서 20만원 정도 수입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실질임금은 최저임금인 5,580원보다 낮은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교통비 삭감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김민철 노무사는 “교통비를 안 주는 것 자체가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근로계약관계에 적용되는 조건이나 복무규칙 같은 것을 취업규칙이라고 하는데, 취업규칙을 근로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위반이다” 며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비 삭감 이후 40분씩 걸어서 출퇴근 하고 있다는 권모 (60) 아이돌보미는 “8년을 돌보미로 근무했는데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는 작년에 처음 알았다”며 “사기업도 아닌 정부가 근로기준법을 안 지킨다는 게 충격적이었고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의 일,가정양립 어려움과 양육비 부담은 저출산 추세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낮은 출산율로 2017부터 생산인구가 감소해 2018년에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14%를 넘으며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들어선다. 올해 2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생산가능인구 증가를 위한 모든 정책적 역량을 투입하길 주문했었다.

그러나 당장 아이돌봄 서비스의 이용시간 제한으로 경제적 부담이 커진 맞벌이 엄마 정씨는 최근 둘째 계획을 포기했다. 정씨는 “둘째는 안 낳는게 아니라 못 낳는다” 며 “이번 일을 겪고보니 솔직히 정부는 출산율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리아 헤럴드 이다영 기자 dy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