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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Ex-major leaguer Park Chan-ho comes home

South Korean baseball pitcher Park Chan-ho, a former Major League Baseball All-Star who recently signed with a South Korean team, is the living proof that you can come home again.

On Friday, Park donned his new Hanwha Eagles uniform in Daejeon, some 150 kilometers south of Seoul, as the Korea Baseball Organization (KBO) club held a New Year's meeting with all players and team executives on hand.

 

(Yonhap News)
(Yonhap News)

For the first time since signing a one-year deal with the Eagles on Dec. 20, Park, wearing his patented No. 61 on the back of his uniform, stepped onto the field at Hanbat Baseball Stadium.

A native of Gongju, South Chungcheong Province, just north of Daejeon, Park last appeared at this ballpark in 1991 as a local high school senior. And as he entered Hanbat, the 38-year-old seemed to radiate excitement.

"It feels like I am finally home again," Park told reporters.

"Now that I am in my uniform at the ballpark, I finally feel like part of the team."

Late last year, the KBO allowed a special rule change so that Park, released from the Orix Buffaloes in Japan after a disappointing season, could join the KBO right away. Otherwise, Park, who'd never pitched in the KBO before, would have had to enter a rookie draft this August and, if selected, wait until 2013 to play.

The Eagles had the prior rights to negotiate with Park based on the proximity of Daejeon and Park's hometown. He signed for a minimum salary of 24 million won (US$20,680) and asked the Eagles to donate the 600 million they had set aside for him to help develop local amateur baseball.

Park recalled that he was also pursued by the Eagles in high school. He chose to go to college and pitched for Hanyang University in Seoul. In 1994, he signed with the Los Angeles Dodgers, becoming the first South Korean to reach the majors.

Having spent 17 seasons in the majors with seven different teams, and one season in Japan, Park said he has a lot of adjustments to make.

"I am Korean, but I have spent so much time overseas," Park said. "Playing in a different environment will have some pros and cons. But, I think this will be a special season when younger players and I will get to help out each other."

Park won 124 games in the majors, the most by an Asian pitcher in league history. From 1997 to 2001, he averaged 15 wins a season, including a career-high 18 in 2000, and earned his lone All-Star selection in 2001.

The veteran said younger players, however, should not feel intimidated by his presence and his career resume, adding that he is simply a teammate for them and they can ask him anything.

"Whether I end up winning one game, five games or 10, the important thing is to stay healthy and pitch the way I am capable of pitching," he said. "But when I struggle, then young players can still learn from that."

Park said the 2010 season with Orix was a great learning experience for him. Injuries limited him to only seven games, and none after June, and Park went 1-5 with a 4.29 earned run average (ERA). He spent the majority of the season in the minors, but Park said all was not lost there since he had time to make technical adjustments.

In addition to Park, the Eagles also signed slugger Kim Tae-kyun, who is returning to Hanwha after two seasons with the Chiba Lotte Marines in Japan. The offseason moves make the Eagles, which finished dead last in two of the past three years, a sleeper for 2012.

Expectations will be higher than in recent seasons, but Park said it will be important "to have fun" and not stress over results. (Yonhap News)

 

<한글 기사>

'한화맨' 박찬호, 21년 만에 대전야구장에 서다

"시무식 낯설지만 빨리 적응해야"
"일본에서 1년은 경험..야구는 즐겁게"

올해 한국프로야구 마운드에 오르게 된 '코리안 특급' 박찬호(39)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첫 걸음을 뗐다.

박찬호는 6일 한화의 홈 구장인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진행된 구단 시무식에  참 석하고 나서 가볍게 첫 훈련도 했다.

선수 시절 내내 부침을 함께해온 등번호 '61'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선 박찬호는 시무식 내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박찬호가 한밭야구장을 찾은 것은 충남 공주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1년  이 후 21년 만이다.

이날 한화 구단 시무식은 30여 언론 매체에서 취재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3개 매체뿐이었다.

일본에서 복귀한 중심타자 김태균이나 LG에서 이적한 투수 송신영 등도 올해 한 화의 새 식구가 됐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투수로는 최다승(124승)을 기록 한 한국야구의 영웅 박찬호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박찬호 자신도 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했을 때는 물론 월드시리즈 및 올스타전 참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초대형 계약을 성사했을 때에도 취재진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고 놀랄 정도였다.

박찬호는 이날 시무식 후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첫 시즌을 맞는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박찬호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신변을 정리한 뒤 한화 선수단이  16 일 출국해 미국 애리조나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리면 합류할 예정이다.

◇21년 만에 찾은 한밭구장.."고향에 온 느낌"= 박찬호는 먼저 "고향에 온 느낌 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 팀의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서 시무식 에 참가하니 이제야 팀원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기대감과 설렘을 드러냈다.

박찬호는 한밭야구장을 찾은 것이 20여 년 전이라고 했다. 정확하게는 1991년의 일이다. 박찬호는 당시 시즌 35개의 홈런을 친 이글스의 중심타자 장종훈을  기억했 다.

당시 공주고 3학년이던 박찬호는 연고 구단인 이글스의 초대를 받았다. 그는  "아마도 구단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진출해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박찬호는 한양대 진학을 택했다.

박찬호는 초등•중학교 때 한밭 구장에서 경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는  관중석 도 참 높아 보였는데…"라며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했다.

◇낯선 시무식..적응의 시작= 미국야구에서는 시무식이 따로 없다. 지난해 오릭 스에서 뛴 박찬호는 일본에서도 새해 훈련캠프를 시작하는 첫날 비슷한 행사를 하지 만 한국처럼 선수들과 구단 임직원, 스태프가 한데 모여 기원하고 다짐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런 것도 빨리 적응해야 할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찬호는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오랜 시간 해외에서 뛰었다. 다른 환경 때문에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있을 것이다. 후배들과 서로 돕고 배우는, 특별한 한  시즌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갈수록 새로운 것이 많이 닥칠 텐데 문화적 차이를 빨리 습득하고  적응하 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팀이나 소속을 중요시하고 미국은 개인적인 것에 집중한다는 차이도  들려줬다.

◇"후배들아, 별명 '찹'으로 불러줘라"

 박찬호는 한화 선수 중 최고참이다. 그는 "(지난 3일) 선수단 워크숍에 참석했 는데 유쾌했다"면서 "팀 이상으로 가족적인 것, 한국과 외국은 그것이 다르다"고 말 했다.

박찬호에 따르면 한화에서 아직은 신경현 등 고참선수 한두 명만 그를 '형'이라 고 부른다. 나머지 후배들은 '선배님'이라고 부른단다.

박찬호는 2009년 필라델피아에서 뛸 때 '찹(chop)'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 불펜에서 대기하다 마운드에 올라 위기를 끊어 내는 모습에서 붙여진 애칭이다.

박찬호는 한화 후배들도 '형'이나 '찹'으로 자신을 불러주길 바라고 있다. 그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이제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체력관리 등 후배들에게 전수해줄 비법을 들려달라고 하자 박찬호는 "나는 코치 도 아니고, 부처님•예수님도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생활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후배들이 지켜볼 것이고 궁금하면 물어볼 것이라면서 자신은 그저 똑같은 동료일 뿐 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다만 팀을 위해 개인적으로 희생해야 할 부분이 보이면 그런 점은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것이 팀이 질적으로 강해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의 1년이 큰 도움될 것"= 박찬호는 작년 오릭스에 입단해  일본야구 를 경험했다. 그의 지난시즌 성적은 고작 7경기 출장에 1승5패, 평균자책점 4.29로 초라했다. 2군을 오갔고, 여름 들어 허벅지 부상 등이 겹쳐 지난해 6월 이후로는 아 예 1군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박찬호가 일본 진출을 택할 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박찬호 자신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순간의 아쉬움보다는 길게 내다봤을 때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마음을 굳혔다.

물론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아쉬움은 있지만 2군에서도 꾸준하게 던지고  기 술적으로 부족한 것도 많이 훈련했다며 일본 생활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군 선수들의 화려함만이 아닌 2군 선수들의 어려움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일본에서의 1년에 대한 박찬호의 평가다.

◇"내가 망가지는 모습에서도 후배들은 배운다"= 박찬호에게 예상 성적을  물었 다. 그러자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이 선발로 10승 이상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김 감독님은  칭찬 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발전하게 해주는 분이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했다는 얘길 듣고 나니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1승이든, 5승이든, 10승이든 안 다치고 많은 경기에 나가서 자신을 보 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못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후배들 은 배운다는 것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중 하나였던 그레그 매덕스가 두들겨 맞는 모습 을 보면서 "매덕스 같은 완벽한 선수도 이럴 때가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투구 내용이 좋지 않았던 어제 경기를 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찬호는 한국 타자들이 한 단계가 아니라 엄청난 성장을 해 더 많은 연구와 공 부가 필요하다면서 재미있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야구는 홍성흔처럼 즐겁게"= 박찬호는 한국에서 야구를 즐겁게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도자들은 모두 선수들에게 야구는 전쟁이라고 했다. 승패에 따른 보상도 극과 극이었고,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처음에 미국에 진출했을 때 에도 즐겁게 야구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단다. 즐거움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찬호의 생 각이다. 그는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마음먹은 결과를 내는 것, 목표를 정해 내가 얼마만큼 준비하고 그걸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박찬호는 올해 한화 분위기를 즐거운 쪽으로 끌고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분위 기 메이거 역할을 잘하는 롯데 홍성흔을 예로 들며 "내가 홍성흔(롯데)처럼은  못하 겠지만 류현진이나 김태균 같은 후배들을 잘 활용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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